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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6 [요리] 수행자 빙수 (6)
먹을거리2011. 6. 26. 01:06


제닥에서 빙수를 먹었는데, 미니멀한 비주얼과 고급스러운 맛에 반했다. 8500원.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그 맛과 모습과 가격을 곱씹어 보다가 
다음날 빨래볼을 사러 갔던 생활용품마트에서 빙수기 마저 모셔왔다.

우유얼음을 갈고, 팥은 없고 그리 좋아하지 않아 생략하고, 미숫가루를 가득 뿌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를 흩뿌렸다. 그런데 비주얼이 사하라 사막 같다.


그래서 떡을 꺼내왔다. 쑥을 뜯어 직접 만들었던 쑥개떡. 찰떡아이스 삘이 나지만, 역시 팥앙금은 없다.
그런데 맛이 너무 구수 텁텁했다. 
 

 


그래서 코코아 가루를 꺼내왔다. 빙수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레어아이템. 우유얼음과 녹아들면 환상의 궁합일까.
그런데 아뿔싸. 공정무역 코코아는 no 마쉬멜로 no 설탕... 
 

 


이렇게 탄생된 것은 바로 - 수행자를 위한 빙수. 
"선사님, 여름이니까 이 빙수 드시면서 명상하세요"

탐진치 삼독이 사라지는 맛.
가부좌를 하고 복식호흡 하면서 먹으니 제맛. _()_

 

Posted by 오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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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오~어떤 맛일지 궁금! ㅋ

    2011.06.26 01: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 비주얼은 뭥미;;; 수행자 빙수 ㅋㅋㅋ. 누누히 말하지만 그런 거 먹으려면 확실히 몸에 나쁜 거 팍팍 넣고 맛있게 먹으라니까능~~~
    딸기에 설탕 팍팍 뿌려서 얼려놓고 빙수에 넣어먹는 거 어때. 맛있다던데.

    2011.06.26 06: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오매, 반가워요. 메일 아래에 링크타고 블로그 놀러왔어요. 재미있는 것, 읽을거리들 가득하네요. 종종 블로그에서도 뵈요! (어젠 여름과 둘이서 무대독회 끝나고 네시간동안 밥안먹고 수다만 떨었답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떠들다 집에 도착할 쯤 되니 몸이 후덜...ㅎㅎ 화요일에 보자구요)

    2011.06.26 20:26 [ ADDR : EDIT/ DEL : REPLY ]
    • 여름과 네 시간 독대는 매우 레어한 미팅인데 와. 근데 노리님 블로그 완전 멋지네요.

      2011.06.27 02:28 [ ADDR : EDIT/ DEL ]
  4. el24, 쏘녀 / 그러니까 이건 내가 수행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실패작에 대한 자조적 미화. 이제 극복 회복 행복 빙수에 도전!

    2011.06.27 02:30 [ ADDR : EDIT/ DEL : REPLY ]
  5. 단언컨대 최고의 상근기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제를 놓고, 숙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카르마도 아니며, 공덕도 아니며, ‘선택’을 받아서도 아니며, 특정 민족도 아니며, 특정 종교적 신앙심도 아니며, 특정 수행과 고행도 아니며, 특정 지역도 아니며, 특정 문화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구도자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자기는 태어난 ‘누구와 무엇’으로 여기며, 즉 육체와의 동일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여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어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정말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것이(육체) 정말 나일까?’하고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서 ‘거짓된 자기’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통찰은 ‘자기 불신’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도가 이렇다, 깨달음이 이렇다, 진리가 이렇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무엇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로 넘어오세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에만 자기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자각’으로 이어지며, ‘자각’함으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자신을 안다는 것은 ‘홀로 독립적이다’라는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하며, 설혹 ‘답’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답’의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지금까지의 동일시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존재’적인 측면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자각은 완전한 ‘자유’라 할 수가 있습니다.


    -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합니다. www.uec2018.com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2018.07.29 18: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