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 공동체2011. 6. 27. 06:20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모든 생각이 귀결되고, 밤에는 잠도 안 오고 새벽잠 조차 일찍 달아나는 요즘. 처음에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하면 좋을지로 넓디 넓은 리스트를 그렸다면, 종국에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 앞에서 멈추게 된다. 어려운 것, 피하고 싶은 것, 꺼려지는 것. 그 벽에 걸린 말이 다름 아닌 "열 사람의 한 걸음" 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늑골이 아렸다. 여성단체에서 일했고, 앞으로도 공익부분에 종사 & 매진해보고픈 소망이 있는 주제에 저것이 나의 아킬레스 건이라면 어쩔. 아무리 
세 사람의 서른 걸음은 안되겠니? 라고 되물어도, 새로운 스타일의 활동도 있고 삶의 양식은 다양한 법이라고 자위해도 언젠가 씨름해서 승패를 보지 않으면 안될 터이다. 1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언을 구한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인간은 본래 어떠한가? 의지주의자인 나도 인생사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주언니의 운명풀이에 귀기울이게 되듯, 케케묵은 본성논쟁이 문득 중요하게 느껴진다. 개인주의는 매우 안온하고, 뭔가 '함께' 하는 것은 강한 동기부여와 에너지를 요하는, 좀 근지러운 일로 느껴질 정도로 - 이미 내 몸에 녹아들어와 있는 이것을 인정해야 할지 거슬러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면. 1800년대 후반 다윈은 자연선택설로 진화과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은 헉슬리 같은 제자에 의해 사회정치적 주장으로 확장된다.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으로 확정되어. 이기주의는 존재의 영속을 위해 유전자에서부터 발현되고 있다는 이론도 현대에 베스트셀러로 읽히고, 
사회주의는 이기주의라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실패했다는 판정도 귀에 못 박혀있다. 

러시아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인 크로포트킨은 반론한다. 동식물은 경쟁하기도 하지만 상호지원, 부조를 통해 함께 살아남는다고. 이 점을 다윈도 알고 있었는데, 왜 제자들은 상호성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축소, 누락하고 있냐고. 흰꼬리독수리는 먹이를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 함께 사냥하고, 몸길이 3m의 바다코끼리도 수십만의 집단을 이루어 살아남는다.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해도, 같은 종 내에서 개별적인 개체들이 끝없이 경쟁하는가? 예외적인 환경, 특별한 지역적 상황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이 찾아오면 경쟁은 완화되지 않던가.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최대한도로 생의 충만함과 강렬함을 추구하기 위해 가능한 한 경쟁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가.

원시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서구인들에게 식인종으로 알려진 야만인들조차 원시공산제 아래에서 공동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밤이면 춤을 추고 지도자 없이 살아갔다. 에스키모는 사적인 소유를 인정하면서도, 부의 '축적'은 부족의 단합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 부자가 되면 모두에게 옷과 음식을 나눠주는 포틀래취를 전통으로 시행했다. 절제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근대의 산물이다. 씨족간 분쟁과 전쟁 일변도를 그린 역사기록도 대중의 평화로운 일상에는 관심없었던 역사가들의 편파적 과장이다. 에스키모의 포틀래취는 캐나다와 미국정부가 '자국 노동윤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850년대에 금지령을 내렸다. 농지 공동소유와 공동분배를 관장했던 프랑스 촌락공동체의 민회도 루이 16세가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예술, 공예, 과학, 상업 등 독립된 집단들의 창조적인 개인들이 자유를 표출하면서도 함께 살기 위한 밀접한 연합이었던 길드도 중앙집권화된 국가 때문에 소멸되어갔다.

 크로포트킨은 귀족출신 군인이었는데, 왕궁에 가서 일을 해보니 황실은 결코 (농노제 개혁을 포함하여) 변화를 만드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병사들과의 생활에서도 규율보다는 열정과 신뢰만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행정기구-정부는 결코 인민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없다는 결론도 얻는다. 그 이후 그는 여러 공동체를 만나게 되는데 - 정부조직, 교회조직, 징병에 반대하고 700명의 군인이 무기를 불태우고 함께 캐나다로 대거 이주한 급진 가톨릭 분파 두코보르파, 경찰과 군대를 폐지하고도 한 건의 범죄조차 발생하지 않았던 평범한 인민들 스스로에 의한 통치기 파리꼬뮨, 산기슭에서 함께 살면서 지도자를 벗이자 동료로 삼으며 함께 일하고 운동한 스위스 시계공들의 쥐라연합 등이 그것이었다.

전횡을 부리기 시작한 볼셰비키, 코민테른이 축출하고, 각국 사회주의 그룹에 회유되고, 각 나라 정부로부터 소거당하면서 상호주의자 (이들은 아나키스트 계보로 연결된다) 는 종적을 감추거나 일부 테러리스트로 산개되기도 했지만, 68혁명에서 그 골수의 정신과 실천방식, 에너지가 분출했고, 이후 자유(대안)학교,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으로 생명줄이 이어지고 있다.

상호주의. 상호부조. 상호지원.

-함께 일한다 (자급자족. 분배는 필요에 따라. 이를 위하여 공동체는 소규모 단위로 유지, '국가' 단위는 필요없다)
-함께 논다 (피크닉 가는 게 주로 하는 일인 상호주의자 모임도 있다 - 여기서 보시해서 투쟁기금 마련;)
-토론한다 (맹신하고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이론은 없다, 설득력을 얻고 갖춰가는 과정만 있을 뿐) 
-지도하지, 받지 않는다 (전위조직, 지도자, 정부에 반대하며 그것과 싸운다. 자기자신과, 일대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교육이 중요하다 (이론적인 공부 뿐 아니라 몸으로 함께 하는 공부가 매우 중요, 장기간 서로 투자)

이행의 이론에 따라, 전위와 조직의 선도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주의 혁명도 아니고, 사랑할 능력도 보듬어안고 연대하는 마음과 기운 마저 쪽쪽 앗아가버리는 히마리 없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대의에 맞춰 개인의 삶도 폭력적인 방식도 도구로 삼는 집단주의 테러리즘도 아니고, 첨단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종교도 아니고 - 한없이 인간적이면서, 한없이 개인적이고, 한없이 이성적이면서 한없이 사랑과 신뢰에 겨워, 삶을 사랑하고 너(복수형)를 사랑하고 미래를 희망하며, 노동하면서 나누고 함께 발전해가는 - 그런 게,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란 말인 거다.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건지, 더 알아보고 싶다. 
Posted by 오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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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맘썰렁

    뼈속까지 개인주의자이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만큼은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그게 이렇게 힘든 것이냐? 내가 허약한 것이냐, 인간이 오묘한 것이냐, 아니면 진리는 간단한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엄청 헤매고 있는 것이냐. 믿음이 무너지니 마음이 닫히고, 마음이 닫히니 나를 혹사하게 된다. 제발 고개를 들어 밖을 보아라. 그리고 네 마음을 보아라.

    2011.07.03 20:04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도 내가 멈춰선 이 지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늘처럼 무섭도록 정확하게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네가 가장 깊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라, 라고 최고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나를 불 지펴대고 싶기도 하고. 동시에 아직도 부끄러움 속에서 머리털 하나도 안 젖었는데 벌써 물기를 닦고 나가겠다니! 선방의 할과 방처럼 소리치고, 죽비로 내리치고 싶기도 하고. 일상은 노력을 통해 정돈되어 가고자 하는데, 마음 속은 전투가 클라이막스 - 누군가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상호부조 끝장토론, 혹은 상담 혹은 선문답해봐야하지 않나 사실 우리는. 서로 얼굴보는 것만으로 연민과 괴로움에 동시에 빠지지만 머리채, 아니 마음멱살을 서로 잡고 밀고 당기며 씨름해서 깨달음 하나 들고 밖으로 나오는 한판 거한 싸움에 다녀 오고 싶어.

    2011.07.04 10:37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11.07.04 21:46 [ ADDR : EDIT/ DEL : REPLY ]
    • 비밀/ 나는 무슨 주의자가 되기에는 아는 것이 없고 무장하고 싶은 마음도 잘 없어요.(여성주의(자)의 경우에는 다른 이즘의 용례와 그에 대한 지향자들의 태도와는 좀 다른 것 같고요.) 이런 포지션은 참 나이브하죠, 내가 귀 얇게 혹한 부분이 누군가 엄밀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화를 안길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고 배우고 싶다는 실용적인 마음이 가장 우선인 듯 해요. 한가지 의문이 있다면 - 일상에서, 작은 단위에서도, 내 자신부터 실험하고 이뤄볼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해서 그것이 자본주의를 용인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자본주의를 용인한다는 비판은 어떤 근거들을 주로 쓰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과 조직와 사상은 다 이런 의심과 비판에 서로를 빠뜨리고 자신도 처하게 되는 것이겠죠? 논쟁사는 잘 모르지만, 저는 일상에서, 개인의 몸과 욕망과 관계를 바꾸게 하는 신념이나 운동이 가장 강력하고 무섭게 느껴져요. 심지어 '팬덤'이나 '마니아' 문화도 안티 자본주의적이라고 볼 정도입니다. 아, 혹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삶 보다, 자본주의 자체를 끝장 내야만 의미있는 거라는 생각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치권력, 정부나 국가, 체제의 전복 역시 어떤 연속선 위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 그것은 체제를 전복했다고 여긴 시점 이후에도 계속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는 것, 혹은 한발 뒤로 밀리지 않는 것을 먼저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물론 열 발, 백 발자국 이후를 읽고 계획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역사와 이론 공부를 해야 할 부분. 그러나 그래도 지금의 한 발자국에 집중할 것이고, 그게 지금의 제 결심이고, 그로인해 마음과 태도와 몸이 바뀌어 가고 싶어요. 여튼 이 모든 것에 대한 당신의 역사와 경험, 생각, 의문, 계획 그런게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2011.07.07 03:14 신고 [ ADDR : EDIT/ DEL ]
    • 비밀댓글입니다

      2011.07.07 17:53 [ ADDR : EDIT/ DEL ]
    • 작은 발끈과 방어도 숨으려고가 아니라 보려고 꺼내는 당신. 에둘러 쓴 댓글에도 직격으로 답해줘서 고마워. 내 깜냥 너머의 의미와 평가와 계획을 모르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리고 최근 5년간 발간된... 그런 욕구는 나도 동일.

      2011.07.11 00:37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