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엄마와 마트에 갔다.
엄마는 나로 인해 이것저것 흥미롭게 구경하고
나는 엄마로 인해 평소 사지 못했던 것들을 담았다.
마트에는 거의 대부분이 누군가와 함께 장을 보고 있었다.
남편, 부인, 청소년 애, 꼬마 애, 연인..
술과 라면, 온갖 레토르트 식품이 종류별로 채워진, 어느 츄리팅 커플룩의 30대 부부,
모자를 서로 씌워주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중딩 10대 커플,
알록달록한 그릇과 앞선 계절 옷, 쿠션이 담긴 멋쟁이 애기를 태운 젊은 엄마,
관계, 생활, 그리고 경제.
이들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바라며, 필요로 하고 불러일으킨다.
온갖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주말 저녁, 마트에 오고,
마트는 생활 곳곳을 유지해주고, 빛내주거나 적어도 덜 버석거리게 해줄 물건들을 구비해놓았다.
한주, 한달을 살아갈 관계의 재료를 얻고 싶은 사람들과
수 천종의 상품을 매칭해주고, 마트는 매출을 올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생활을 상상하고 그리면서, 물건을 담는다.
니걸 사러 왔지만 내 것도 보고, 우리 것도 더 담는다.
먹을 걸 사러왔지만, 입을 것 탈 것 씌울 것도 담는다.
당장 필요한 걸 사러왔지만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라는 물건도 담는다.
마트에서 적어온 대로만 사는 '합리적인' 소비란 없다
경제적, 관계적 양감은 상호작용하면서 점점 부풀어오른다.
마트에 담기는 물건이 많을 수록, 함께 해먹을 요리가, 함께 입고 바를 공동의 생활들이 쌓여가고
함께 카트를 밀며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산할 양도 늘어난다.
마트는 가족의 행복을 광고하고,
연인들은 마트 장보기를 로망으로 손꼽는다.
관계를 너무 경제공동체에 의존해서 지탱하는 것 같아 얄팍하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사실
같이 밥해먹는 식재료를 고르고, 같이 덮는 이불을 구매하고, 떨어진 속옷을 새로 사주는 일은
어찌나 관계의 핵심이던지.
필요한 걸 딱딱 적어 두었다가 재래시장이나 동네가게에서 사오면 되지, 하지만
내가 미처 모르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 생활을 더 즐겁게 해줄 무엇이 또 있는지
새로 구경하는 일은
얼마나 배울 게 많은 구경이던지.
이런 마트의 쇼핑매커니즘에 맥을 못추고
엄마와 나는 자취딸을 위한 오뎅 다섯봉지와
엄마 집 벽에 붙여줄, 완성하면 목련나무가 되는 시트 벽지 한 롤
그 외의 많은 '적어가지 않은' 관계의 재료들을 사왔다.
아, 대형마트의 시장독식이 너무 싫은 사람들은
마트에서 구경하고 재래시장에서 사면 되겠구나!
하긴 관계도 경제도 빈곤한 요즘의 나는, 마트 갈일이 거의 없다 -_-;;
ps. 매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은, 자폐로 보이는 어느 집 청년 아들이었다.
모든 손님들과 매장 판매직원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그 청년은
부모의 황급한 손과 걸음에 의해 마트 밖으로 끌려 나갔다.
"저 부모는 얼마나 괴로울꼬?" 위로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전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제발 쳐다보지 좀 마시고, 흘려들으며 무념하게 자기의 쇼핑을 하는 장면이 상상 안된다.
누구의 경제, 어떤 이의 관계에는 닫힌 공간..
ps2.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캠페인이 있었는데, 쿠당
지급된 의자에 앉아 계신 캐셔 언니는 단 한명도 없었다.
"아이고, 정신없이 계산하는데 누가 앉아있어요?" 손사레를 치셨다.
3D업종은 복지보다 수당투쟁에 매진하는 게 좋은걸까... 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