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언니가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참 안타까웠다
딱 보아하니, 공부만 하고 책만 읽고 가르마 한번 뒤집지 않고 교복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남이 말거는 거 싫어하고 남에게 간섭도 안하며 살아온
결벽증 모범생 전교1등 부잣집 딸 관상인데
누가 정치라는 걸 하게 했을까
노회한 능구렁이가 되어 사람들 마음 속을 천만번씩 들락거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상 돌아가는 판을 천리 내다보고
백만볼트 안광, 으르렁 거리는 쌍욕, 팔뚝과 어깨로 미는 몸싸움을 구사하며
누가 뭐래도 굽히지 않는 개똥철학, 자기 스스로도 속아 넘어가는 감동과 의지를 먹고 사는
그런 게 정치인이 아닌가
"엄마의 마음으로 보살피겠습니다" (공보물 첫 페이지)
"1억원짜리 피부클리닉 상시 출입 논란"
나는 둘 다 나경원 언니에게 가혹하다고 본다.
내가 공부만 잘하는 여자들을 몇 명 본 적 있는데,
이들은 결코 엄마 노릇이나 자가피부관리를 잘 할 수 없다
아, 개중에 화장 잘하고 옷 잘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글로 배웠거나, 하긴 하지만 마음은 안 가 있거나, 공부를 어중간하게 잘하는 셋 중 하나
엄마의 마음도 되겠고
피부관리도 이제 혼자 잘 하겠다는 것이
나경원 언니의 진심이라면,
그걸 위해 자기의 적성과 성격과 취미와 단점과 한계를 버리겠다면
그건 또 무슨 개인적인 명운인지 힘든 길을 가시겠구려... 심심한 위로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후 수해 동안의
나경원 언니를 보면
언니에게 '정치'라는 진로와 꿈을 제시한 사람이
아무래도 잘못된 정보를 준 게 아닐까 싶다
그걸 버리지 않고도 정치할 수 있다고.
엄마의 마음이든 똑똑 끊어지고 떽떽 부러지는 말투 표정이든
무조건 다 하라고. 수퍼우먼이면 다 할 수 있다고
알파걸로 살아온 사람에게
정치라는 새로운 마스터 과제를 안겨준 게 아닐까
자기극복이 아니라 정복.
넌 할 수 있어
라는 만트라. 평생의 주문.
나는 나경원 언니가 그냥
좋아하는 피부관리실에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나는 피부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고백하고 양해를 구하든지
니들이 피부 옷차림 쌍심지 켜고 보면서 날 더러 어쩌라고 거냐고 논평을 내든지
정치는 모순적인 요구들을 그냥 '다 해냄'으로서 정복하는 게 아니라고 깨닫든지.
정치는, 알파걸의 새로운 진로가 아니다
정치는, 가장 노회하고 상처받고 닳고 닳아 빠져 무서울 것도 놀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그런 언니들이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여성정치인, 이라는 이름에 차별화된 대안적인 좋은 의미를 붙이고 싶다면.
남자들의 비호 없이 남자들에게 이용됨 없이 속아넘어감 없이
무소의 뿔처럼 갈 수 있으려면.
그나저나 하도 도토리 키재기여서
개든지 소든지 서로에게 묻어갈 수 있는
남자 정치인들은 좋겠네
아니지... 그렇지 않지.
나 들여다보기, 나 뛰어넘기를 하지 않아도 직장다니고 정치하고 세상살 수 있다는 게
왜 좋은 거겠어.
하긴 뭐가 좋은 건지, 좋지 않지 않으려고 좋아하게 된 건지..
여튼 나경원 언니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괴롭고 부끄럽고 복잡한 심경과 고민을 안겨 준다.
언제까지 하실 거유?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