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 바이짜 데카! 드디어 첫 편지를 쓰는군요. 당신이 월급의 일할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일을 나에게 부탁해도 되겠냐고 요청했을 때, 저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기부가 얼마나 아름다운 바이러스인지 몸으로 느껴지더군요. 이미 사회에는 기부를 전문으로 하는 재단도 있고 회사도 있지만, 좌충우돌하게 될지라도 당신은 소소한 일상의 경비들을 아껴 기부금을 모으고, 나는 기부가 필요한 곳을 이곳저곳 찾으러 다니는- 아마추어지만 우리의 마음과 손으로 시작하는 그런 새롭고 작은 의기투합 이란 것도 몹시 떨렸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이 보내주신 1차 기부액을 새로 개설한 통장에 정리해두고 나서도 거의 한달, 기부자 편지 카테고리를 열고서도 몇 주. 도움이 필요한 곳은 오늘도 눈에 채이고 발에 밟히건만, 가장 적절하고 의미깊은 곳을 찾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적어보는 일, 기부액을 집행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이 되지 않더군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고, 이런 저런 것들을 따져보면서 하루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러다 어제, 1박 2일간의 모금전략워크샵에 다녀왔습니다. 기부에 대해 배우고 싶었어요. 우리 상담소에서도 지난 해에 모금 교육을 했었고 올해에는 비영리 단체 상담소 재정자립을 위한 스터디모임도 시작되었는데요. 제 안에 좀 더 풍부하고 깊은 영역이 생겨나길 바랬습니다. 모금하는 자, 펀드레이저 입장을 위한 교육이었지만, 저는 기부받은 것을 어디에 쓰면 좋을지도 함께 고민했으니, 얼마나 입체적인 배움이 될 수 있었는지요.
그 중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기부의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첫 편지도 늦었는데 바로 실전에 들어가야지, 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이 깨달음은 늦은 첫걸음을 더 깊이 디딜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부는 "언어" 라는 사실.
우리의 의기투합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함께 모여 있을까요. 태초에 우리를 있게 한 "언어" 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이게 한 언어의 지배를 받는 자들.* 하루에도 수 많은 언어가 생겼다 사라지지만, 세상에 오래 깊이 존재해야 할 언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나와 너에게 뿐 아니라 세상에 너르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을 확산하지 않고 나 혼자 알고 있는 것은 책임 방기라는 것. 그 언어를 더 깊고 풍부히 해석하고, 잘 정리하는 것. 시대의 변화에도 날카로운 설명력을 벼리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모금은 그 언어를 확산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모금, 기부 역시 언어이고 그 언어를 풍부히 하고자 했던 이런 강의가 참 좋았습니다. 우리는 기부의 의미, 역사을 훑어 내리는 가운데, 지난 역사와 종교가 속에 누적된 기부의 의미도 찾아보았습니다.
유대교는 기부전통이 매우 강한 종교라고 합니다. 바이쯔바라는 성년식에는 우리나라의 결혼식처럼 축금을 내는 풍습이 있는데 바이쯔바를 통한 기부가 매우 많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헬라어 '쩨레크'라는 단어는 정의justice를 의미하는 동시에 기부donation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헷갈려하며 의문을 품는 번역자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든 이는 공평한 몫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더는 더 있고, 덜 있다. 그것은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의 몫을 주라"는 명령은 이들이 선한 관리자였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부는 정의justice이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불의에 해당한다는 믿음입니다.
유대교의 기부원칙은 첫번째, 일어서서 줘야 하고 두번째, 오른손으로 주어야 하며, 세번째, 전체 예산의 15% 이상을 모금과 기부를 위해 써야(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부자는 기부가 실현될 그곳에 찾아가 기부하고(자기 사무실로 불러서 주지 않고), 왼손이 모르게 기부하고, 매우 적극적인 기부를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적극선을 실현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유대교 지침서는 they are not aggresive enough!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 바이짜 데카'는 기부를 하도록, 자선을 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상급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이들이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자이므로, 하늘에 더 큰 상급이 있다고 합니다. 유대교내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는 직분에 해당되고요. 이런 개념은 기부를 어쩔 수 없는 적선, 혹은 빚진 마음에 쫓기듯 갚는 것이 아니라, 삶-공동체가 돌아가게하는 매우 당당하고 정당한 원리로 다시 자리매김합니다. '가 바이짜 데카는' 는 그 의로운 행위가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이 일어나게 하는 촉진자이구요. 하늘의 상급이 아니더라도, 의사는 아픈 이들을 만나고 변호사는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금자fundraiser는 인생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결단을 내리는 이들을 만나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 아니겠냐고 강사는 덧붙였습니다. (기술강의는 인터넷 매체에도
있네요)
일박 이일 과거, 현재, 세계 곳곳, 크고 작은 기부의 세계를 여행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을 기부를 통해 설명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몸으로, 재능으로, 시간으로, 의견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힘을 나누는 우리의 일상다반사가 모두 기부donation로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자원나눔들이 사적인 관계를 넘어 세상 곳곳의 공동체적 과제-필요들과 만나고, 자본주의의 '비(주)체'들이 존재,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 언어의 움직임에 '돈'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에 체계적으로 잡히느냐가 중요한 과제이겠지요.
가 바이짜 데카! 당신이 나를 나는 당신을 북돋고 또 돕고 있으니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가 바이짜 데카가란 걸 발견합니다. 기부자와 펀드레이저, 기부를 받은 이 - 이들은 서로 촉발하고 순환하며 또 다른 기부를 반드시 낳게 되니 그 어디에서 시작할 지라도 모두들 한번쯤은 누군가의 가 바이짜 데카로 살게 된다는 사실도요.
그동안은 몰랐던 가 바이짜 데카의 마음이 열린 이후의 삶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요? 세상이 소통하고 크게 순환하게 하는 작은 몫들. 몹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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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는 성경 히브리서 1:3 "(예수는) 그의 능력있는 말로 만물을 붙들고 있다" 는 것을 가장 적합한 구절로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말', '언어'는 정희진 선생님이 비판한 "태초의 말씀이 있었다" 의 '말씀'과는 다른 뜻입니다. 태초에 있었다는 '말씀'은 로고스Logos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 (남성중심적이고 근대적인) 인간의 이성을 의미하지만, 히브리서 1:3의 '말'은 레마rhema로, 이것은 우주에서 지금 여기로 충돌해들어오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를 생생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있는 말로, 세상의 만물을 두루 엮고 돌보고 있다는 뜻이 되니 이것이야말로 전세계의 비영리단체들에게 주고싶은 경구라는 것입니다. 성경속에서 말씀은 다 같은 말씀이 아니고, 예수님이 즉석해서 한 인간으로서의 레마가 곳곳에 있다네요. 성경 속 로고스와 레마에 대한 재밌는 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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